[보도자료] 영화가 사랑한 보석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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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미 지음
제이앤제이제이(디지털북스) 펴냄|424페이지|2026년 1월 15일 출간|가격 25,000원
[시작하는 글]
우리 집은 구덕산 아래 이층집이었다. 구덕산으로 오르는 높다란 계단 옆, 왼쪽으로 네 번째 대문. 그 집이 유아기부터 사춘기를 보낸 내 마음의 고향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빛바랜 사진 속에는 눈이 소복이 쌓인 골목길에서 부모님과 외할머니 그리고 어린 세 자매가 나란히 서 있고(막내 남동생은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 뒤로 우리 집이 조용히 배경처럼 자리한다. 그 시절에는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상을 펴고 밥을 먹고, 주말이면 거실에서 영화를 함께 보곤 했다.
주말 저녁, 집 안을 가득 채우던 <토요 명화>와 <주말의 명화>의 테마 음악은 어린 나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마법의 문이었다. 흑백 화면이든 컬러 화면이든, 영화가 시작하기 전 나오는 그 음악은 언제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나누는 문을 열리게 했다. 그리고 그 영화 속에서 막연하게나마 ‘보석’과 ‘주얼리’라는 존재를 처음 접했던 것 같다. 유난히 반짝이던 스크린 속의 작은 물건들이 내 안에 서서히 각인되었다.
마릴린 먼로가 부르는 노래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를 들으며 보석이 궁금해졌고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 매장의 쇼윈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장면을 보며 실제로 저기에 가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상상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해피 엔딩마다 등장하던 다이아몬드 반지는 어린 내게도 사랑의 상징이자 행복의 완성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크린 속 보석이 늘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은 전쟁과 피로 얼룩진 세계의 현실을 폭로했고, 때로는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며 역사와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보석은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을 때, 미국 여행에서 어느새 뉴욕 5번가의 티파니 매장 앞에 서 보았다.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바라보던 바로 그 유리창 너머로, 나 또한 어린 시절의 꿈을 비추어 보았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그곳에서 작은 목걸이 하나를 샀다. 그렇게 파란색 박스에 담긴 그 은목걸이가 내 인생의 첫 번째 명품 주얼리가 되었다. 영화 속 환상이 현실로 건너오는 순간, 내 안의 시간이 하나로 포개지며 보석은 관객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나 또한 그 힘을 직접 경험했기에, 이 책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여전히 보석이나 주얼리는 많은 독자들에게 ‘어렵고 먼 세계’로 인식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삶과 문화 속에 늘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작인 <그림 속 보석 이야기>가 회화 속 보석의 역사와 기록을 탐구했다면, 이번 <영화가 사랑한 보석, 스크린 속 주얼리 이야기>는 보석이 시대와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스크린을 배경으로 펼쳐 보이려 했다.
오드리 헵번이 목에 걸었던 옐로 다이아몬드부터 <타이타닉>의 블루 다이아몬드, <오션스 8>의 1,500억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진주 목걸이, <오션스 12>에서 도둑들이 노리는 파베르제 에그, 그리고 조선의 미의식과 장인정신이 깃든 <상의원>의 봉잠까지. 이들의 감정과 이야기 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에 녹아든 하나의 캐릭터가 된 보석들과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토종 주얼리가 영화를 통해 세계로 전파되는 날을 꿈꾸며 이 책을 준비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는 기쁨과 행복으로 보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생기고, 한국의 영화 산업과 주얼리 산업이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품어본다.
<토요 명화>·<주말의 명화>의 음악이 다시 들려오는 듯하다. 조명을 머금은 스크린 속 보석이 클로즈업되며 문이 열린다. 그 문 너머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2025년 늦가을,
저자 민은미

